기 소르망...
'국제교역·문화공유' 영토분쟁 막는다”

우리는 세계가 변해가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변화의 의미가 분명하지 않고, 이에 대한 분석도 충분하지 않다.

지난 시대의 변화 양상들에 비해, 현재 진행 중인 변화의 주요 특성들 중 하나는 여러 부문들의 변화가 동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과학, 경제, 정치, 사고방식, 분쟁, 풍습 등에서 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지만 동일한 리듬으로 변화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국가, 과거유산·미래지향적 요소 혼재






이로 인해, 일부 국가들이 경제적으로는 진척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고, 개인적으로는 과학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 사적 생활에서는 전통적 문화를 따르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각 국가는 물론 각 개인도 과거 유산과 미래 지향적 요소가 혼재된 퍼즐과 같은, 또는 깨어진 거울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파편화된 분열현상을 겪고 있는 것은 전례 없는 현상이다. 20세기 중반까지 인류는 대체로 느리고 보편적인 변화가 이어지는 환경 속에서 살아 왔다.

모든 문명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변화의 불균형 현상은 국제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즉, 국제법에 근거한 일종의 세계 정부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동시에, 국가성립 이전 시대와 같은 부족 간 분쟁을 목격하기도 한다. 세계화는 흔히 진정한 의미의 커뮤니케이션보다는 구성원들이(우방이든 적국이든) 서로 잘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을 갖게 한다. 왜냐하면, 구성원들의 사고방식들은 서로 상이한 시대 속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일반 이론은, 최근에 있었던 한국과 그 인접국들(중국 및 일본), 그리고 남북한 간의 논쟁들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시대착오적인 북한의 군주무덤 참배


남북한에 대해 생각해 보자. 평양을 방문한 외국손님들은 모두 고조선 시조인 단군의 무덤을 의무적으로 방문해야 한다. 채색된 시멘트로 만든 이 무덤은 물론 진짜가 아니지만, 북한의 이데올로기적인 특성들을 보여준다. 즉, (북한 내에) 오래 전부터 국가가 실제로 존재했던 사실과 문화적 정통성에 대한 주장인 것이다. 북한에서 코리아의 첫 왕조가 탄생했다면, 북한이 한국보다 더 정통적인 국가가 아니겠느냐는 논리인 것이다.

그러나 무덤의 진위에 대한 논쟁을 떠나서 북한의 주장은 여러 시대를 뒤섞고 있기 때문에 일관성이 없다.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어떤 정권이 가진 정통성의 근간이 되는 것은 가상적인 무덤의 위치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존재 또는 최소한 국민적 동의 여부이다. 무덤에 관련된 이야기는, 앞서 일반이론에서 강조되었던 행동의 비일관성의 한 예증이다.

게다가 북한은 언제나 여러 형태의 사상과 기술이 혼재된 다원적인 세계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무덤은 옛날 것인데 콘크리트로 되어 있고, 핵발전소 건설조차 일종의 유교적 사상으로 포장되어 있다. 반면 한국은 정치적 표출 양식과 경제제도 및 문화를 동시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려고 한다는 점에서 보다 일관성이 있다.


중국은 자신들의 역사부터 회복해야


또 다른 비일관성 또는 정치적 혼동의 예는, 고구려왕조가 중국의 일부라는 주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중국당국은 한국의 첫 왕조가 중국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발견했다는 듯이 행동하면서 서로 다른 시대에 속한 개념들을 뒤죽박죽으로 뒤섞고 있는데, 이는 북한과 유사한 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지역 국가들이 형성되기 이전에 존재했던 왕조들의 성격을 규정하기 위해, 현대 국가의 기준(그것이 중국의 것이든 한국의 것이든)들을 적용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옛 왕조들의 가치체계를 현대 국가의 가치체계들 속에서 재현시킬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은 시대착오적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현대 국가들 간 관계의 근거를, 현대역사 이전의 개념에서 찾는 것 역시 시대착오적이다.

요컨대 중국정부의 이러한 주장은, 중국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인간상‘을 구축한다는 명목아래 중국의 역사적 유산을 끊임없이 파괴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역설적이라고 판단된다. 중국인들은 한국인의 역사를 자신들 것으로 삼기보다는, 중국인 자신들의 역사를 회복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한 섬 일본영토 주장에 당황


이와 같은 관점은 일본에도 적용된다. 일본 일부에서 역사의 이름으로 한국의 한 섬을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은 당혹스러운 일이다. 일본이 자신의 역사를 직시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도 역사적 사실의 가치와 정통성에 대한 비이성적인 혼동을 반박할 수 있다. 지금의 영토관련 논쟁은 현 시대에 인정되는 기준들인 법과 민주주의라는 잣대로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연구의 대상이지, 정통성의 대용품을 찾아내는 액세서리 백화점이 아니다.

종합해서 말하자면, 고구려가 중국 역사에 속한다거나 독도의 옛 국적이 일본이었다는 등의 논란을 벌이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 자체가 정통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문서 학자들은 고구려인들이 중국의 고대어(어쨌든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언어)로 의사소통을 했다든지, 독도의 통치자가 일본인이 되기를 원했다는 말로 우리를 설득하려 하겠지만, 이는 현재의 영토에 관한한 어떤 영향도 미칠 수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대의 정통성은 시대에 뒤떨어진 토대 위에 세워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한반도 통일 바라지않는 이웃 나라


이처럼 한국을 들볶아대는 중국과 일본의 주장은 시대착오적이지 않은가? 그들의 목적은 역사적 진실 회복보다는 한국의 전진에 제동을 걸고, 나아가 한국의 통일을 막으려는 것이다. 일본과 중국은 지금의 한국을 마음 편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의 의식 저변에는, 한국은 항상 예속된 국가로 남아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그런데 한국은 그들에게 지속적인 도전이 되고 있으며 어떤 점에서는 비위에 거슬리는 것이다. 한국은 경제적 현대화, 민주주의적 정통성 및 문화적 계승 등을 결합?조화시키는 일을 성공적으로 이루어가고 있다. 말하자면 한국은 모든 분야에서 동시적인 진전을 이룩해 가고 있는데 민주주의의 결여, 성장의 불균형을 겪고 있는 중국은 그렇지가 못한 것이다. 또 일본은 아직도 문화적 혼란(혼동)상태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인의 특성 중에는 인접국들이 허풍으로 보는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점 역시 아시아 라이벌들에게는 신경 거슬리는 일이다.

중국인들과 일본인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생각대로 한국에 대한 주도권을 복원시키려고 과거 역사에 기대보려 하지만, 때는 너무 늦었다. 세상은 변했다.


동북아도 서유럽식 평화정착 바람직


세상의 변화를 통해, 우리는 영토와 관련한 논쟁들이 해결되기를 기대할 수 있다. 이를 위한 두 가지 방안이 있을 수 있다.

우선 지난 50년간의 경험으로 볼 때, 과도한 민족주의적 열정들은 경제적 번영과 자유 민주주의 가운데서만 실질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유럽에서 수 천년 동안의 전쟁들이 사라진 것은 이를 입증해 준다. 즉, 국제교역은 국경에 평화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국경이 철폐된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가져다 주는데, 이는 전통적 외교로서는 이룩하지 못했던 일이다. 중국, 일본 사이에 ‘유럽식의 해결책’은 바람직한 목표가 될 수 있다.

아시아에서 영토권 주장 및 국경 논쟁이 지속되고 있는 것도 한국 주변국들의 경제, 교육, 정치적 발전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북한의 경우를 보면 더욱 명백해진다. 즉, 교역이 분쟁을 완화하는데 현실적으로 최선의 길이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중국이 보다 민주적이며 보다 정의롭고 균형 잡힌 발전을 이루게 되면 한국으로 인해 불안해하기 보다는 한국과의 교역을 증진시키려 할 것이다. 그런 시기가 오기 전까지는 중국인들은 한국을 괴롭히기 위한 고약한 역사적 이유들을 고안해 낼 것이다. 일본의 경우는 더욱 복잡하여 일본인들 스스로가 자신들에 관해 성찰해 볼 것을 기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방안인 세계화라는 변화가 지정학적 논쟁들을 진정시킬 수 있을 것이다. 즉, 세계화가 새로운 세대들의 개인적인 정체성개념에 변화를 가져다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해 폭 넓어지는 세계의 젊은이들


20세의 한국인, 일본인 혹은 중국인에게 있어 묵은 역사적?지정학적 모든 논쟁들은 의미가 없다. 즉, 그들 중 대부분(이는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시아에서도 확인 가능하다)은 다원적 정체성으로 구성된 새로운 개성을 갖고 있다. 한 국가의 시민으로서 그 언어를 사용함과 동시에, 세계의 시민이며 현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시민인 것이다. 수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은, 같은 연령대의 중국 및 일본 (그리고 미국) 젊은이들과 동일한 영상, 음악, 환상의 세계를 공유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같은 국적의) 구세대들보다는, 젊은 사람들(그들의 국적이 무엇이든) 간에 서로 닮은 점이 더 많다. 이같은 다원적 정체성은 영토와 문화 사이에 새로운 판단기준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미국이나 중국에 있는 한국인도 한국에 있는 한국인만큼이나 한국적일 수 있는 것이다.

세계 도처에서 현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시민으로서의 소속감(결속감)이 지정학적인 의미에서의 시민권보다 점차 우세하게 되리라는 것을 예상해야 한다. 이같은 변화는, 오랜 분쟁들을 종식시킬 것이다. 물론 이로 인한 새로운 갈등 상황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아직은 알 수 없는 부분이다.

◆기 소르망은.
1944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동양어학교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프랑스의 정치적·문화적 지도자를 배출하는 파리행정대학원(ENA)을 졸업했다. 출신교의 경제학 초빙교수를 역임하면서 프랑스 매체의 정상 <르 피가로> <렉스 프레스>를 기점으로 <월 스트리트 저널> <아사히> 등 세계적 매체에서 칼럼니스트로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국제기아해방운동>의 창립 멤버로, 파리 교회 볼로뉴 시의 부시장으로, 프랑스 총리실 문화정책의 브레인으로 활동하면서 세계적 대학의 초빙교수를 겸임하고 있다.

저서로는 <열린 세계와 문화창조><20세기를 움직인 사상가들><신국부론><사회주의 종말의 여로><자본주의의 종말과 새세기><자유주의적 해결방법> 등 다수가 있다.
by 가방싸라 | 2005/03/17 18:03 | 문화 | 트랙백 | 덧글(0)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유사함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유사함'


영원회귀한다고 했던가...

나는 과거 누구의 삶을 살고 있는건가... 풋
by 가방싸라 | 2004/11/19 19:41 | 트랙백 | 덧글(0)
폐허...
레논의 친필 'Imagine'




몇달 잊고 지내다

다시 몇달 잊고 지내지 싶다....
by 가방싸라 | 2004/09/08 05:03 | 문화 | 트랙백 | 덧글(1)
긴단어들....
supercalifragilisticexpialidocious '훌륭한, 환상적인'

floccinaucinihilipilification '가치가 없다고 여김'

pneumonoultramicroscopicsilicovolcanokoniosis '진폐증'
by 가방싸라 | 2004/06/24 07:57 | 트랙백 | 덧글(0)
Black Attraction....Revolve 17
먹고싶다...
by 가방싸라 | 2004/06/17 16:21 | 트랙백 | 덧글(0)
NO WAR~!!!
NO WAR~!
by 가방싸라 | 2004/04/27 22:06 | 트랙백 | 덧글(0)
미래의 착취자가 될지도 모를 동지들에게
진보세력 원내등원을 축하하며
좋아하는 시 하나 남깁니다.



먼 저편

- 미래의 착취자가 될지도 모를 동지들에게 -

체게바라

지금까지
나는 나의 동지들 때문에 눈물을 흘렸지.
결코 적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오늘 다시 이 총대를 적시며 흐르는 눈물은
어쩌면 내가 동지들을 위해 흘리는 마지막
눈물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멀고 험한 길을 함께 걸어왔고
또 앞으로도 함께 걸어갈 것을 맹세했었다.
하지만
그 맹세가 하나 둘씩 무너져갈 때마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배신감보다는
차라리 가슴 저미는 슬픔을 느꼈다.
누군들 힘겹고 고단하지 않았겠는가
누군들 별빛 같은 그리움이 없었겠는가
그것을

우리 어찌 세월 탓으로만 돌릴 수 있겠는가
비록 그대들이 떠나 어느 자리에 있든
이 하나만은 꼭 약속해다오
그대들이 한때 신처럼 경배했던 민중들에게
한줌도 안 되는 독재와 제국주의의의 착취자들처럼
거꾸로 칼끝을 겨누는 일만은 없게 해다오
그대들 스스로를 비참하게는 하지 말아다오
나는 어떠한 고통도 참고 견딜 수 있지만
그 슬픔만큼은 참을 수가 없구나

동지들이 떠나버린 이 빈산은 너무 넓구나
밤하늘의 별들은 여전히 저렇게 반짝이고
나무들도 여전히 저렇게 제 자리에 있는데
동지들이 떠나버린 이 산은 너무 적막하구나

먼 저편에서 별빛이 나를 부른다
by 가방싸라 | 2004/04/20 23:53 | 트랙백 | 덧글(0)
뇌관
어찌보면 단조로운 일상을 채워가는 모습들

영혼의 뇌관을 터뜨려야한다
by 가방싸라 | 2004/04/20 22:24 | 문화 | 트랙백 | 덧글(0)
언제 먹어도 맛있는.
유럽식 맥주 '카푸치너' '애델바이스' 본토맛 그대로


'유럽식 정통 맥주를 즐겨보세요.'

독일식 '카푸치너'(KAPUZINER)와 오스트리아의 '에델바이스'(EDELWEISS) 맥주가 국내 맥주 애호가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최근 ㈜헤페바이스 비어는 유럽 젊은이들로부터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는 이들 맥주를 수입, 판매하면서 점차 시장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카푸치너는 1722년에 암반수로 만든 최초의 맥주다. 특히 효모 맥주로 맛이 깊고 진하며 뒷맛이 깔끔한 게 특징이다.


지난해 독일의 7,000여 맥주 브랜드 가운데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으며, 현재 세계 80여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에델바이스는 모차르트의 고향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생산된다. 풍부한 맛과 향으로 지난해 열린 '세계맥주대회'(World Beer Cup)에서 20개국 600여개 회사의 맥주를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했다. 다양한 호프를 첨가, 부드럽고 시원하며 뒷맛이 깨끗하다.


LG25 등 편의점과 할인마트, 백화점 등에서 구입할 수 있다. 같은 용량의 다른 수입 맥주에 비해 최고 50%까지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게 장점. 가격은 카푸치너 맥주(500㎖·캔)가 2,300원이며, 에델바이스 맥주(500㎖·병)는 2,500원이다.(02-597-5450)


by 가방싸라 | 2004/04/07 00:21 | 트랙백(1) | 덧글(2)
인디언 이야기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가다

이따금씩 말에서 내려

자기가 달려온 쪽을

한참동안 바라보고선

다시 말을 타고 달린다고 합니다.

말이 지쳐서 쉬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쉬려는 것도 아니며

혹시

너무 빨리 달려

자기의 영혼이 미쳐

뒤쫓아오지 못했을까봐

자기의 영혼이 돌아올 때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바쁘게 살다보니

영혼을 돌볼 틈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며

자기 영혼이

돌아올 때를 기다리는

인디언의 모습이 그리워집니다
by 가방싸라 | 2004/03/26 18:20 | 문화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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